지난 일요일, 모범청년 창훈군과 함께 MICHAEL KENNA의 사진전을 보러갔습니다. 사진전을 그럭저럭 돌아다니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실망과 안타까움을 느꼈던 케이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주제가 우리가 바라는 것과 너무 다르거나, 추상적 예술 그 자체에 파고들어버린 듯한 작품들을 즐기기엔 전 꽤나 초보자였거든요. 그런 까막눈의 용호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은 상당히 느낌이 좋았습니다. 특히 이번 인터넷에서 보게된 몇개의 샘플들은 '이번에는 혹시?'하는 느낌을 가지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WHITE WALL GALLERY는 청담동에 위치한 작은 미술관입니다. 작은 건물의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서 약간의 우려도 있었으나, 직접 들어가보니 걱정은 많은 부분 상쇄되었습니다. 비록 작은 규모에 입구가 좀 횡하기는 했지만, 미술관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들이 어떻게 전시되어 있냐는 것!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조명이 밝게 비추고 있고, 불빛도 백색광이어서, 사진을 감상하기에는 상당히 적절했습니다. 이제껏 몇번의 사진전을 다녔었지만,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어두운 조명을 쓰거나, 화려한 색의 조명을 사용하거나 하였는데,그런 조명은 사진 자체의 색감이나 느낌에 영향을 주는 때가 왕왕있어서 안타까움을 샀던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러한 점에서 이 전시관은 상당히 고려를 많이 해놓은 듯 했습니다.
MICHAEL KENNA의 사진들을 짧게 정리하자면 '선과 안개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희미한 꿈' 이라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모든 사진은 모노크롬이었습니다. 굳이 좀더 세세히 따지자면 은빛의 세피아톤의 느낌이었습니다. 작은 크기에 담긴 흑백의 풍경은 마치 회화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사진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그 질감인데 멀리서 봤을때의 부드러움 그리고 가까이서 느껴지는 까슬까슬함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Suspended Vine, Marley, France. 1995
[SUSPENDED VINE] 과 그 근처에 전시된 사진은 쉬이 피사체가 되기 쉬운 '길'들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보통의 사진들은 원근감을 포커싱으로 표현하는데 반해 작가는 대부분의 사진에서 굉장히 깊은 심도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깊은 원근감을 얻을 수가 있었는데, 바로 거의 대부분의 사진에서 나타나는 '안개'입니다. 시선이 쫓아가는 그 끝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는 안개는 이곳이 끝이 아님을 표현하는 동시에, 우리의 생각과 시선이 명확한 길의 끝에서 끊겨버리지 않고 부연 안개처럼 사뿐히 흩어져버리게 해버립니다.
Fifty Five Birds, Wolverton, Buckinghamshire, England, 1991
가장 인상깊었던 사진중의 하나인 [FIFTY FIVE BIRDS]는 마치 꿈속을 표현한것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광활함에도 불구하고 직선의 단순함이 느껴지는 대지를 채우고 있는 양떼들과 그들의 머리위로 펼쳐진 부연 하늘을 날아가는 55마리의 새들. 하나하나는 분명히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이들이 정말로 이순간에 이렇게 어울려 존재할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그런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왠지 양한마리, 양두마리를 세며 잠이 드는 서양의 정서랄까요?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 꿈의 도입부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Biwa Lake Tree, Study 2, Omi Honshu, Japan, 2002
[BIWA LAKE TREE]는 이번 사진전의 브로셔의 표지를 차지 하기도 했던 사진입니다. 특히나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도 꽤나 떠돌았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분들이 접해봤던 사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에서 찍었다는 이 사진에서는 동양적인 정갈함이 뽑아져나옵니다. 정갈함과 차분함, 조용함은 그의 모든 사진에서 느낄수 있지만, 특히나 이 사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나무이외의 저 빈 공간에 그 느낌들이 꽉 채우고 있는 듯 합니다.
다른 작가들의 사진들에 비해 케냐씨의 사진은 대단히 쉽습니다. 쉽다는 의미는 그 분위기가 보잘것 없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너무나도 사진들이 흩뿌리고 있는 분위기가 강해서 초보자라도 쉽게 반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강한 분위기가 동적인 역동성에서 나오는것이 아니라 극도의 정적인 조용함에서 나오기에, 처음의 강렬한 느낌에만 우리를 반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계속 바라보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작은 느낌을 느끼는 순간까지 질리지 않게 해준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제가 받았던 케냐씨의 사진들은 '이른 아침 침대위에서 잠에서 깨어, 잘 생각나지 않는 꿈속의 희미한 풍경을 떠올려본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혹시나 요 근래 어딘가를 헤메이는 꿈을 꾸신적이 있다면 케냐씨의 사진전을 가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거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출처 : http://www.michaelkenna.net
이글은 지난 2003년 9월에 썼던 마이클 케냐의 사진전에 대한 후기를 수정한 글입니다. 올해도 케냐씨의 사진전은 3월 18일부터 4월 17일까지 이 WHITEWALL전시관에서 열렸습니다. 내년에도 열렸으면 좋겠는데^^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