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29살이 끝나갑니다. 올해를 시작하는 시기엔 여러가지 생각을 했었네요. 20대의 마지막 1년이나 많은 것을 해야지. 이런것도 저런것도 해야지. 평소보다 더 많은 결심과 시작한 한해였는데 벌써 12월도 끝에 다가왔습니다. 12월은 유난히 아픈일이 많아서 주말에는 집에 아무도 없는 집에 앉아 멍하니 보낸 일이 많았습니다.
조용한 집 거실 소파에 자리잡고 올 한해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이루고자했던 것보다, 흩어져버린 것들이 더 많은 한해였습니다. 많은 소중한 것들이 사라졌고, 달아나버렸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몰려옵니다. 내가 가진 것들이 덧없고, 가지려는 것들 조차 가치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난 이제 조금 있으면 서른인데. 무엇을 가진 걸까요.
아픈 몸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그래서인지, 마음이 바닥에 내려앉으려 할 때 쯤에 갑자기 바깥이 환해졌습니다. 오늘 눈을 뿌리느라 하늘에 가득차 있던 구름이 조금씩 밀려나나 봅니다. 햇살이 드리웁니다. 볕이 잘 안드는 아파트 1층집 거실이지만, 오후 네시 이 맘 때만은 깊은 햇살이 들어오나 봅니다. 그리고, 베란다에 펼쳐놓은 블라인드에 어른어른 무언가가 나타납니다.
그림자였습니다. 1층집이라 아파트 화단에 심어놓은 정원수의 그림자가 비칩니다. 오후의 누은 햇살이, 나무를 블라인드에 얹고 수묵화 한폭을 그립니다. 지나가는 구름에 맞춰, 진해졌다, 옅어졌다, 흩어졌다, 뭉치길 반복하며, 베란다 창가에 그림 한폭을 그립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할 길과, 가져야할 단호함과, 그러면서 버려야할 것들을 생각하며 심란해져 있던 나는, 잠시 멍해지고, 그리고 이내 감탄해버리고 맙니다.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바른 길인가? 그런 큰 문제들은 확실히 존재합니다. 남들과 같기 위해,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 가지려하는 고통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남보다 나를 보고 싶습니다.
그래요. 나는 블라인드에 비치는 그림자에 감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돈과 명예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다른 가치를 볼 수 있고, 보고 싶습니다. 아직 그럴 수 있는 한 최대한 그러고 싶습니다. 아직은 마음으로 수묵화 한장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게 서른을 맞이하는 29살의 마지막 달의 결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