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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김정흠 교수 별세
적어도 여러분이 80년대나 그 이전에 태어나신 분이라면 이 분을 아실런가 싶다. 김정흠박사님이다. 그리고 이분이 어제 (10월 2일) 별세하셨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는 이분을 직접 뵌 적이 없다. 다만, 좀 더 밤이 어둡고, 좀 더 별이 빛나고, 조금 더 고요하던 그 어린 시절의 여름날, 나는 이 분이 쓰신 소년잡지에 실린 글들을 읽고, 대청에 드러누워 세상을 상상하고, 우주를 그려보고, 내 꿈을 비추어 본 기억이 있을 따름이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인 주제에, 신문이나 잡지 기고란에 박사님의 얼굴이 나오면 괜히 반가웠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조용조용이야기 해주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박사님의 글을 만나볼 기회는 꽤나 많아서 당시에 잘 읽었던 어린이 신문이라던지, 학생과학이라던가, 소년중앙등등 당시 유명한 잡지에서는 꽤나 자주 박사님의 글을 볼 수가 있었다.
그래. 이렇게 글을 적으며 박사님께선 참으로 어린아이들에게 과학의 꿈을 실어주려고 많은 일을 하셨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이렇게 추억을 짚으며 살아나는 기억속에서, 그 신문귀퉁이 제목옆에 붙은 박사님 사진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살아나는 것을 느끼니까.
그렇게 박사님을 생각하다가, 그렇게 박사님이 꿈을 불어넣으려 했던 어린 아해들 중의 한명이 나였음을 깨닫는다. 좀 더 아이들이 과학을 좋아하고, 좀 더 멋진 세상을 - 우리의 80년대 정서가 꿈꾸었던 과학이 이루어 내는 그 멋진 세상말이다 - 우리들이 만들어나가길 바라셨던 박사님의 바램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아마도 그는 꽤나 그의 일의 성공했던 것 같다. 당시 우리는 고무동력기에 환호하고 라디오 조립대회를 나가곤 했고, 우주지도 한장을 벽에 걸어놓는 것은 큰 유행이었으며, 별이름을 좀 더 많이 외운다는 것은 큰 자랑이었으니까. 우리들의 꿈은 늘 과학자였으며, 만화영화를 바라보며 김박사와 남박사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했던 세대였다.
그런 박사님이 꿈을 불어넣으려 했고, 그렇게 잠시 들떴던 내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니, 송구스럽기 그지 없다. 물론 전혀 알지도 못하는 박사님에게 내가 송구스러워해야할 이유란 없다. 그럼에도 송구스럽고, 부끄럽고 미안하다. 과학에 대한 열정을 잊은 자신이, 학문에 싫증내는 스스로가. 그리고 가장 미안한것은 박사님의 글을 읽고 꿈에 차서 하늘을 바라보던 내 10살에게 가장 미안하다.
세상이 무서운 것은 사람을 모르는 사이에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서운 것은, 사람들에게 '세상때문에 그랬다'라는 너무 쉬운 변명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사이엔가 나의 꿈을 조금씩 바스라뜨리며 세상의 탓을 해오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박사님이 돌아가셨다. 그의 부고를 읽으며, 나는 박사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꿈을 가져봄이 어떠하냐고 말을 건네며 사라지시는 환상을 본다. 그가 불어넣으려 했던 호기심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그 꿈들이 바스라지지 않도록, 나는 스러저가는 자신의 손을 잡고 세상속을 걸어갈 것이다. 오늘은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편히주무세요. 당신의 인생은 정말로 가치있었답니다.